인천시는 북위 36°55′~ 37°58′, 동경 124°37′~ 126°48′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행정 구역의 면적을 가진 광역시로 전체 면적이 1,029㎢에 이르고 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서해안의 경기만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한강 하류 유역과 개풍군, 연백군과 동쪽으로는 서울 및 경기도 김포 부천, 시흥, 안산시와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서산시, 당진군과 접하고 있습니다.
✤ 위성에서 바라본 인천시 ✤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며, 옹진반도와 태안반도 사이에 형성된 경기만에 자리 잡고 있어 육지와 해양의 점이적 성격을 가집니다. 이에 따라 육상교통과 해상교통간의 수송적환지(輸送積換地)를 형성하고 있으며, 수도권의 많은 물동량을 처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찍이 항구가 발달하여 해외에서 수입되는 무거운 원료를 사용하는 제분, 제당, 정유, 제철 및 가구공업이 항구 주변 지역에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2000년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국내 출입국 인원의 72%가 오가는 국가 관문으로 2009년 3천만 명이 이용하였습니다. 2009년 1,641억 달러 국내 총 무역액의 24%를 담당할 정도로 국가경제의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기준 국제화물처리 2위, 국제여객운송 10위권, 환승률 18.5%, 환적률 47.2%를 차지할 만큼 동북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1)
과거 인천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해 <그림 2>와 같이 중구․동구를 생활권 중심으로 하는 원(原)인천지역과 부평을 생활권 중심으로 하는 부평지역으로 생활권이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현재는 송도신도시, 계양구, 검단신도시, 논현동 등 생활권 중심이 다핵화를 이루고 있지만 원(原)인천과 부평지역 사람들의 교류는 적고, 오히려 부평지역 사람들은 편리한 교통2)으로 인해 서울과의 교류가 많은 편입니다.
✤ 지형적 요인에 의한 생활권 분리 ✤
✤ 인천시 주요 교통로 ✤
<표1> 인천시 연도별 인구 현황을 살펴보면 인천시는 타 지역 주민의 이주 및 영역의 확대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1981년에는 인구 100만이 넘어 직할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에는 광역시로 면적이 더욱 확대되면서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3번째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송도신도시를 비롯한 경제자유구역의 선정 등으로 앞으로 인구는 계속 늘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 도 |
인 구(명) |
연 도 |
인 구(명) |
1895년 |
8,876 |
1955년 |
295,878 |
1990년 |
16,445 |
1960년 |
402,009 |
1905년 |
26,330 |
1965년 |
485,511 |
1910년 |
31,011 |
1970년 |
646,013 |
1915년 |
31,264 |
1975년 |
799,982 |
1920년 |
36,490 |
1980년 |
1,083,906 |
1925년 |
56,276 |
1985년 |
1,259,107 |
1930년 |
63,658 |
1990년 |
1,818,293 |
1935년 |
82,997 |
1995년 |
2,362,132 |
연 도 |
인 구(명) |
연 도 |
인 구(명) |
1940년 |
171,000 |
2000년 |
2,475,139 |
1946년 |
220,242 |
2005년 |
2,531,282 |
1952년 |
256,517 |
2010년 |
2,727,980 |
자료 출처 : 인천시 통계연보
✤ 인천시 시역 확장 ✤
인천이란 명칭은 조선 초기 태종 13년에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이때의 인천은 지금의 제물포 지역으로 한정되었습니다. <그림 4>에서 보듯이 1910년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총독부 관제에 따라 ‘인천부(府)’가 되었으며 부평까지 행정구역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광복 후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인천시로 명칭이 바뀌었고, 1981년에 인천직할시로 승격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행정기구의 개편으로 북구가 북구와 서구로 분리되었습니다.1989년 김포군 계양면, 옹진군, 영종면, 용유면 등이 통합되었고, 1995년에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인천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까지 통합하면서 전국 최대의 면적을 가진 광역시가 되었습니다. 1995년 3월 1일 북구를 다시 분리해 제1경인고속도로 남쪽에는 부평구를 북쪽에는 계양구를 신설하였습니다.3)4)
현재 인천 행정 구역의 명칭 중에는 방위와 관련한 동구, 서구, 남구, 중구(북구는 1968년부터 존재하다가 1995년에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뉨)가 있는데, 이 명칭들은 땅이 좁았던 과거에는 적절하였으나 현재는 점차 인구가 늘고 도시의 크기가 확장되어 방위 관련 지명은 그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5)
간척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120여 년 전 개항 당시만 해도 인천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무리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간척으로 인해 대부분 육지가 되었고, 10여개의 섬은 섬의 형태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개항 이후 매립의 시초는 인천항 축조 공사에서 비롯되었는데 이후 제2도크 공사가 완공되자 중구, 동구, 남구 일대 갯벌이 대부분 간척되었습니다. 이후 원목 하치장 조성 사업, 남동공단 조성을 위한 매립, 동아건설의 김포 매립지 공산, 수도권 매립지 조성 사업, 영종도 국제공항건설사업, 송도신도시 건설사업 등으로 많은 갯벌이 사라졌습니다.
인천시 도시공간구조의 특성은 경인철도와 경인고속국도 등 동서방향의 교통로를 따라서 주택, 공업단지가 입지하였고, 역세권을 중심으로 상업지구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계속된 동서방향 도시발달은 도시를 남북으로 양분해 도시 성장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천시는 도심이 명확하지 않거나 혹은 부재한 것도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수도 서울과 인접한 거리와 경인간 교통의 발달로 인해 최상위 중심 기능(백화점 및 고급기능상가)들이 집적된 도심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현재 인천시의 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구월동 지역이라 할 수 있으나 타 도시에 비하면 그 중심성이 상당히 약합니다. 도심의 부재는 인천시의 도시기본계획이 일관성 없이 이루어진 것도 커다란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기성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도시경관이 뚜렷합니다. 100년 전 경인철도를 라인으로 조성된 기성시가지는 주거, 공업, 업무 기능이 혼재되어 있고, 도시공공시설과 편의시설 부족이 야기되어 인구의 유출이 많습니다. 인구의 유출은 이 지역의 낙후를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개통된 인천도시철도 1호선 라인은 도시계획에 의해 비교적 도로 정비 잘되어 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아 거주 지역으로 선호 받고 있습니다.
인천시는 현재 송도, 청라, 영종경제자유구역에 초고층 빌딩, 대학, 기업, 병원이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고, 인천국제공항이 동북아지역의 중심공항으로 자리 잡고 있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자유구역 개발 및 인천국제공항의 여객, 화물의 증대로 이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시설(수도권 제2외곽순환도로, 제2공항철도 등)이 새롭게 만들어 질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천시는 접근성이 더욱 향상되어 인구의 유입이 계속될 전망이고 광역교통망의 결절지대 및 고속국도 IC부근에는 대단위의 주거단지가 건설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천도시철도 2호선 및 경인고속국도 직선화 공사가 완공되면 인천시 내부 도시공간구조도 새로운 부도심의 출현, 도심 낙후지역의 재개발 등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1) 자료 출처 : 2010년 인천공항 홍보 브로셔.
2) 자료 출처 : 전종명, 2005, 인천시 도시 지역 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3) 자료 출처 : 2005년 인천바로알기 가이드북.
4) 자표 출처 : 윤대실, 2000, 인천시 인구에 관한 지리학적 연구, 이화여자대학교학위논문
5) 자료 출처 : 2005년 인천바로알기 가이드북.